춘추좌씨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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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
유학자를 중심으로 하는 전통적인 설에서는 『좌전』의 저자를 공자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노(魯)의 태사(太史) 좌구명(左丘明)이라고 하였으나, 전설로서 분명한 것은 아니다. 또한 『사기』(史記)에 『좌씨춘추』(左氏春秋)라는 서적의 이름이 보이고 있는데 이것이 현행 『춘추좌씨전』과 같은 책인가에 대해서도 이설이 존재한다.<ref>사기(史記)
일설에는 옛날부터 있었던 역사서를 [[전한]] 말기의 사상가 [[유흠]](劉歆)이 여러 차례로 춘추좌씨전이라 하였고, 저자는 좌구명이라 선전하였고, 스스로 황제로 오른 [[왕망]]이 한나라를 찬탈하였을때 그 근거로 삼았다는 것이라는 신공양학파 학자 [[캉유웨이]] 등이 여러가지 이설이 있다고 하지만, 이 주장도 입증이 된 주장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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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전』은 『공양전』, 『곡량전』과는 달리 꼭 집어서 『춘추』 본문에 대한 주석으로만 일관하지 않고 『춘추』 본문과는 관계없는 기사도 많이 수록하였는데, 가장 오래된 형태를 남기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ref>野間文史『春秋経文について』p.23 。</ref> 때문에 『춘추』의 해석서라기보다도 춘추 시대의 역사서라고 보는 설도 많다. 또한 『공양전』과 『곡량전』이 애공(哀公) 14년(기원전 481년) 봄 애공이 서쪽으로 사냥을 나갔다가 기린을 잡았다는 이른바 「서수획린」(西狩獲麟)의 기사에서 마치고 있는 것에 비해 『좌전』의 경 본문은 애공 16년 공자의 죽음까지 더 서술하였고, 전을 애공 27년까지 더 기록하였다.
풍부한 자료를 토대로 상세하게 『춘추』를 보완하였고 중국 춘추 시대를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특히 당시의 전쟁에 관한 기재가 상세하다. 또한 같은 시기를 다루고 있는 『국어』는 『좌전』과는 하나의 대립을 이루는 작품으로 보는 설이 있어 『춘추외전』(春秋外伝)이라고 부른다.
== 내용의 구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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