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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덕 (하간헌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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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간헌왕 유덕(河間獻王 劉德, ? ~ 기원전 130년)은 중국 전한의 황족 · 제후왕으로 하간왕이다. 경제율희의 아들이다.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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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년(기원전 155년)에 하간에 봉해졌다.[1][2] 유학을 좋아해 행동거지를 유자에 맞추고, 산동의 많은 유학자들과 교유했다.[1][2]

학문을 닦아 옛 것을 좋아하며, 실사구시(實事求是)하였다.[3] 민간에서 좋은 책을 얻으면 베껴다가 진본은 자신이 가지고 사본을 주며 보상했고 또 멀리에서까지 많은 도술사가 와서 옛 책이 있으면 헌왕에게 진상하니, 그렇게 해서 얻은 고서의 양이 한 조정과 맞먹었다. 하간헌왕은 수많은 선진 시대의 고서를 모았으며, 곧 《주관》(周官) · 《상서》 · 《예》 · 《예기》 · 《맹자》 · 《노자》 등 온갖 경 · 전 · 설 · 기와, 공자 70제자의 논과 · 육예 등이었고, 《모시》(毛詩)와 좌씨춘추박사를 세웠다.[2]

무제 때 입조해[4], 아악을 바치고 삼옹궁을 대했으며, 또 조서로 30가지의 질문을 받았다.[2] 재위 26년 만인 원광 5년(기원전 130년) 정월에 죽었고, 대행령 가 상주하여 시호(獻)이라 했다.[2][1]

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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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후는 원광 5년(기원전 130년) 정월 임자일에 봉해졌고, 방광후, 거양헌후, 누절후, 아무대후 곧 아무민후, 삼호절후, 주향절후, 평성후 곧 성평후, 광후, 갑서후는 원삭 3년(기원전 126년) 10월 계유일에 봉해졌고, 중후 곧 천종후는 원삭 4년(기원전 125년) 4월 갑오일에 봉해졌고,[6][5] 심양후는 봉해진 해를 모르며, 경성원후와 평제엄후와 악향헌후와 고곽절후는 지절 2년(기원전 68년) 4월 계묘일에 봉해졌다.[6]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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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마천: 《사기》 권59 오종세가제29
  2. 반고: 《한서》 권53 경십삼왕전
  3. 안사고의 주석에 따르면 “사실을 얻기를 힘쓰며 항상 진리를 구한다”는 뜻이다. 실사구시란 낱말의 첫 용례이다.
  4. 사기 제후왕표에 따르면 헌왕이 무제 치세 중에 입조한 해는 원광 6년(기원전 130년), 곧 죽을 해뿐이다.
  5. 사마천: 《사기》 권21 건원이래왕자후자연표
  6. 반고: 《한서》 권15상 왕자후표상
  7. 유음(劉陰)이라고도 한다.
선대
(10년 전) 하간애왕 유복
제3대 전한의 하간왕
기원전 155년 ~ 기원전 130년 정월
후대
아들 하간공왕 유불해